섹스리스는 한 사람의 영혼을 서서히 죽이는, 가장 잔인한 가정 폭력입니다.
오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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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사십대가 되었습니다. 공자는 나이 사십을 불혹(不惑)이라 하여,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지 않는 나이라고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아야 할 나이라지만, 202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40대 남자인 저에게 마흔은 그저 견디기 힘든 '지옥의 문'이 열린 해일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꽤 그럴듯한 삶일지도 모릅니다. 매달 밀리지 않고 월급이 찍히는 번듯한 직장, 대출금은 좀 남았지만 우리 가족 몸 누일 30평대 아파트, 그리고 퇴근하면 "아빠" 하고 달려오는 토끼 같은 자식까지.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저를 보며 "너 정도면 성공했다", "가장으로서 자리 잡았다"며 부러움 섞인 칭찬을 건넵니다. 저는 그 말들 앞에서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쓴 소주를 털어 넘깁니다. 하지만 그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마다, 저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킵니다. 아무도 모르는 저의 밤은, 낮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시리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그 순간부터 제 심장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집니다. 그곳에는 저를 한 사람의 남자이자 남편이 아닌,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이자 '더러운 존재'로 취급하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연애 시절의 뜨거움은 결혼이라는 현실과 육아라는 파도 앞에서 서서히 식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했습니다. 아이 키우느라 잠도 못 자고 힘들 테니까, 내가 더 배려하고 참으면 언젠가 돌아오겠지.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육체적인 고단함이 사라진 뒤에도 아내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용기 내어 다가간 날, 아내는 마치 벌레가 몸에 닿은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습니다. "징그럽게 왜 이래?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피곤하니까 제발 좀 저리 가." 그녀에게는 그저 귀찮아서 내뱉은 거절의 한마디였겠지만, 저에게는 인격 살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생을 약속한 반려자에게 '징그러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그것은 단순히 성욕을 해결하지 못하는 불만이 아닙니다. 나의 존재 가치 자체가 부정당하고, 영혼이 난도질당하는 고통입니다.
거절당한 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배 나온 중년 아저씨, 머리숱은 휑하고 눈 밑은 퀭한 모습. 아내가 나를 거부하는 게 당연한가 싶어 자책도 했습니다. 그래서 죽어라 운동하고, 피부과를 다니고, 퇴근 후엔 앞치마를 두르고 청소와 설거지를 도맡아 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아내는 저의 경제력은 사랑하지만, 저라는 남자는 혐오했습니다. 월급날이면 "수고했어"라는 영혼 없는 카톡 하나가 전부였고, 제가 밖에서 무슨 굴욕을 참고 돈을 벌어오는지에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집안에서 저는 철저히 투명 인간입니다. 식탁 위에는 냉기가 흐르고, 대화는 아이의 학원비와 아파트 대출금 이야기뿐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바란 건 대단한 테크닉이나 쾌락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퇴근한 나를 안아주는 온기, "오늘도 힘들었지?"라며 내 손을 잡아주는 스킨십, 우리가 아직 서로를 아끼고 있다는 확인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작은 위로조차 '귀찮음'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섹스리스는 한 사람의 고집으로 유지될 수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상대방의 인생을 갉아먹습니다. 저는 서서히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백 번도 더 이혼 서류를 검색했습니다. 법원 앞까지 갔다가 차를 돌려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식탁을 엎어버리고 "나도 남자다, 나도 사랑받고 싶다"고 절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를 멈춰 세운 건, 거실에서 천사처럼 잠든 제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퇴근하면 세상에서 제일 환하게 웃어주는 그 작은 생명을 보며 저는 무너집니다. 나의 불행 때문에 이 아이에게 '결손 가정'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줄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의 불화로 아이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 행복을 포기하고, 아이의 행복을 지키기로. 나의 40대는 '남자 김철수'가 아니라, 오직 '누구 아빠'로만 살기로 말입니다. 이것은 숭고한 희생이 아닙니다. 비겁한 타협이자, 뼈를 깎는 인내입니다. 오늘 저는 마음속으로 아내와의 '사실혼'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법적인 도장만 안 찍었을 뿐, 우리는 이미 남남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 스스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제 몫을 다하고 독립하는 그날, 스무 살 생일 케이크의 촛불이 꺼지는 그날이 저의 '출소일'입니다.
아내는 꿈에도 모를 겁니다. 제가 묵묵히 돈을 벌어다 주고, 주말마다 운전기사 노릇을 하고, 불만 없이 참고 사니 "이제야 남편이 철들었네", "포기하니까 편하네"라며 안도하고 있겠지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포기한 게 아니라, 칼을 갈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당신이 갑(甲)인 것 같고, 당신의 거절이 정당한 권리인 것 같겠지. 하지만 기억해라. 부부란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다. 당신이 나의 본능과 자존감을 짓밟은 지난 10년, 그리고 앞으로 견뎌야 할 10년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집을 떠나는 날,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집을 나갈 겁니다. 위자료? 재산 분할? 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지옥 같았던 당신의 경멸 어린 눈빛에서 벗어나, 단 하루라도 사람 대접받으며 살고 싶을 뿐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저와 같은 처지입니까? 사랑을 구걸하다 지쳐서, 이제는 분노조차 남지 않은 채 껍데기만 남은 삶을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본능을 거세당한 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전사들입니다. 비록 지금은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지만, 언젠가 터널 끝에서 만날 자유를 위해 오늘 밤도 소주 한 잔에 쓴 눈물을 삼킵니다. 부디 버티십시오. 그리고 준비하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우리의 탈출구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죽은 듯이, 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남읍시다. 20년 뒤, 우리 모두 웃으며 진짜 내 인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Good l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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