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프 여친과 했었는데 이젠 말해도 될까?
저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모든 걸 공유해 온, 가족보다 더 가까운 불알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는 2년째 만나고 있는, 저와도 아주 스스럼없이 친하게 지내던 여자친구가 있었죠. 셋이서 밥도 자주 먹고 술자리도 종종 가졌기에, 저에게 그녀는 그저 '내 친형제의 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친구가 급한 지방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날이었습니다. 마침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더군요. 친구와 크게 싸웠는데 속상해서 술 한잔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친구의 부탁도 있었고 평소 친했던 터라 별 의심 없이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친구에게 쌓였던 서운함, 외로움, 그리고 권태기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여주는데, 어느 순간부터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붉어진 눈빛, 그리고 내 위로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의 정적. 술기운이었을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서로의 외로움이었을까요.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던 길, 차 안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숨 막히는 입맞춤이 시작되었고, 결국 그날 밤 우리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죄책감보다, 그 순간 서로에게 미친 듯이 몰입했던 육체적 쾌감이 더 컸다는 사실이 저를 더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늘 친구의 그늘 뒤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진짜 매력을 알아버린 느낌이었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밀려오는 그 지독한 현타와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우리는 서로 "어제 일은 없었던 일로 하자, 무덤까지 가져가자"며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친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저를 믿고 의지하는데, 친구의 얼굴을 볼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더 미치겠는 건, 가끔 셋이 만나는 자리가 생기면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면서도, 테이블 밑으로 스치는 그녀의 시선과 그날 밤의 뜨거웠던 기억이 자꾸만 되살아나 제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는 겁니다.
우정 가득했던 셋의 관계는 이미 겉만 멀쩡한 껍데기가 되어버렸고, 제 안의 죄책감과 은밀한 자극은 매일 밤 저를 괴롭혔습니다.
17년 전 일인데 친구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아직도 가끔 만나 술 한잔하고 있는데... 이젠 그때 이야기를 하고 사과해도 괜찮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