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난 여친 자취방에서 딴 놈이랑 뒹구는 걸 본 후... 사랑을 잃었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만나 2년 동안 정말 순애보처럼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제가 입대할 때 울고불고 매달리던 그 친구를 두고 훈련소 들어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던지... 군대에서도 매일같이 손편지를 써가며 제대하면 정말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땐 그랬죠. 편지 한 통이 유일한 낙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 친구 형편이 넉넉지 않아 알바하느라 바쁜 걸 알기에, 저는 군대에서 받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모아서 매달 그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데이트 비용 벌려고 고생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라도 더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제대하면 결혼하자는 약속 하나 믿고 버텼습니다.
그러다 상병 즈음 휴가를 나가게 됐는데, 깜짝 놀래켜 주고 싶어서 연락도 없이 꽃다발을 사 들고 그 친구 자취방으로 갔습니다. 반지하 원룸이었어요. 가기 전에 근처 공중전화로 콜렉트콜을 걸어봤는데, 지금 알바 중이라 바쁘다며 황급히 끊더군요.
그런데 막상 도착한 그 친구 집 창문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다가가 보니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습니다. 숨죽이고 귀를 기울였는데... 곧이어 적나라한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눈이 뒤집혀 현관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잠시 뒤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반지하 창문으로 반나체 상태의 남자가 허겁지겁 도망치는 게 보이더군요.
사람이 정말 충격적인 상황을 마주하면 온몸이 얼어붙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 벌거벗은 등을 보면서도 쫓아가거나 욕을 할 수도 없었고, 그냥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습니다. 숨도 안 쉬어지더라고요.
그렇게 그 놈은 도망갔고, 방 안에서 울부짖는 여친을 뒤로하고 저는 도망치듯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잔인하게도 시간은 흘러 전역 날이 왔고, 위병소 앞에는 그 친구가 꽃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그 친구 손을 잡고 근처 모텔로 갔습니다. 밤새도록 그간 참아왔던, 그리고 마지막이 될 관계를 가지고는 새벽녘에 헤어지자는 쪽지 한 장 남기고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사실 그때 가장 저를 괴롭혔던 건 배신감이 아니었습니다. 그 더러운 장면을 목격하고도, 그 여자를 용서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제 자신이었습니다. '젊으니까 그럴 수 있지, 외로워서 실수한 거겠지'라고 억지로 합리화하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 비참한 미련이 저를 더 갉아먹더군요.
그 이후로도 몇 번 연락이 오고 찾아왔지만, 저는 독하게 마음먹고 외면했습니다. 사랑 따위 감정에 휘둘리면 또 비참해질까 봐, 철저히 이성적으로만, 차갑게만 살았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믿지 않고, 곁을 주지 않은 채 살다 보니 어느덧 사십 대 아저씨가 되었네요.
그런데 요즘 문득 그때가 사무치게 후회됩니다. 그때 내가 모른 척 눈 감아줬다면, 아니면 한 번 용서하고 품어줬다면... 지금쯤 토끼 같은 자식 낳고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믿지 못해 곁에 아무도 없는 지금의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사랑을 외면하고 살아온 제가... 잘못된 걸까요?
이제라도 누군가를 믿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