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의 힘
조약돌! 어쩌면 인생과 닮은 데가 너무도 많아 보인다. 높은 산 바위 벼랑에서 여름 더위 겨울 추위를 견디다 못해 떨어져 내려 이 바위에 부딪히고 저 물굽이에 막혀 깨어지고, 깎이고 부서져 갈리고 구르며 닦이기를 또 얼마나 거듭하였겠는가? 시냇물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구르고 엎어지고 내달리다가 중턱에 이르러 흙탕물에 잠기기도 하고 맑은 물에 씻기기도 하다가 큰 것에 치이고 자잘한 것에 받히며 햇볕에 달궈지기도 하고, 엄동설한에 차가워졌다가 헤아릴 수 없는 나날을 또다시 흐르고 흘러 모래톱에 다다른다. 크기나 모양이나 색깔이 비슷비슷하여 구별이 쉽지 않은데 눈 밝은 이와 만나게 되면 사람의 마음에 돌 이상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생겨나게 한다.
긴긴 사람살이 과정 또한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부모 사랑 듬뿍 받으며 금지옥엽처럼 생명을 얻고 태어나 어려움 모르고 자라나지만 세상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세파를 헤쳐 나가야 하는 순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무한대로 펼쳐진 세계의 탐색을 시작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지식의 책갈피를 두루 찾아다녀야 함은 물론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넓이를 측량하기 어려운 일들을 모두 섭렵하는 수고로움을 몸으로 배워야 한다.
질풍과 노도의 시기를 출발점으로 갖은 역경과 모험과 마음고생을 경험하게 된다. 육체적 정신적 강한 힘을 갖추고 성장을 위하여 자존감 만들기에 대한 노력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상도 지속된다. 만남과 헤어짐, 아름다움과 추함, 기쁨과 슬픔, 높음과 낮음, 외로움과 그리움, 명예와 성공, 무거움과 가벼움, 교만과 겸손, 깊음과 얕음, 깨끗함과 더러움, 가까움과 멂과 같은 상황에 대한 이성적 감성적 수용과 거부를 겪는 가운데에서 육체적 단련이 바탕을 이루고, 정신적 성숙을 토대로 사람 모양을 다듬어 갈 수 있는 것도 조약돌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흡사하다.
미움, 기다림, 연민, 의무, 갈등, 기쁨, 변명, 그리움, 슬픔, 고독, 원망, 환희, 좌절, 치욕, 책임 등과 같은 바위 혹은 돌멩이, 돌 조각들과 부딪히고, 섞이고, 추락하고, 버려지고, 뭉개지고, 비벼지고, 모아지고를 거듭하면서 단단한 부분은 남아 더욱 단단해 지고, 무른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부서져 버린다.
마침내 암석의 가장 단단한 핵심만 남은 것으로 사람의 아픈 곳을 눌러 주어 낫게 하는 것이 조약돌의 알 수 없는 작용이라니 놀랍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인간성 정수의 결정체처럼 소중한 존재적 가치를 지닌 것이 사랑인 듯하다. 특별한 인연이 닿지 않은 과정에서 만나는 실존적 사랑으로 ‘단풍 빛으로 물들던 그리운 사람’이나 ‘사랑의 사리’처럼 더욱 삶을 빛나게 하는 그 어떤 존재라면 그것은 사람살이에서 환희의 절정이며 기쁨의 정화임이 분명하다.